셀 던 독트린에 따르지 않더 라도, 역사적인 변화가 그 궤도를 벗어날 가능성이 아주 적다는 것은 언제나 분명하게 여겨지곤 한다. 단 이 땅덩어리 자체가 증발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유일하고(the only), 가장 오래되었고(the oldest), 버려진 세계(marooned world)로 묘사될 것임에 틀림없는 바로 이 행성. 물론 현미경의 배율을 조금만 높여 들여다보면 인간에게는 의식과 자유 의지가 있어서 각각의 행위가 복잡하게 전개된다고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획기적인 역사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소위 돌고 도는 패턴을 따라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때에 그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은 어두워지고 상(像) 자체가 거꾸로 보일 공산이 커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에 타자가 간섭하거나 그들이 무리를 이루게 되면 자유 의지는 완전히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일반 대중은 실패의 굴욕을 겪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해서 설사 견해가 다를지언정 승리하는 편에 가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별문제 없이 가동될 때조차 그것은 준안정 상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린다 한들 종국에는 다시 아래로 되돌아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라. 우리가 자유 의지를 경험한다는 것은 대단한 미스터리이며, 히친스와 더불어 잘(혹은 덜) 알려진 샘 해리스에 의하면 자유 의지란 것은 단연코 환상일 뿐이다. 그는 자유 의지를 두고 그것을 개념적으로 일관성 있게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환상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라고 규정한 바 있다. 대부분의 환상들이 이보다는 근거가 튼튼하다는 말을 덧붙여서(샘 해리스, 『자유 의지는 없다』).
부도덕과 추악함.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맹목적 불쾌감. 종교. 케케묵은 논쟁. 집단 우월주의. 시민 혹은 대중. 또는 목적 없는 군중. 건설. 파괴와 붕괴. 어쭙잖은 피라미드 싸움. 모난 돌. 아귀다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 잘된 정부(政府)와 잘못된 정부. 잘된 지도자와 잘못된 지도자. 군부. 기득권(층). 명예에 들뜬 과학자. 굶주린 예술가. 동맹 혹은 연합. 맹동주의. 무지 속에서의 의미 없는 탐람. 권위. 내부의 위기. 히스테리. 불안. 실속 없는 사유. 신념. 예기치 못한 변수. 배신. 상식 밖의 요소. 어이없는 농담. 고갈. 부패. 낫지 못할 약을 파는 자들. 자본(가). 달콤한 유혹. 탁상공론(빌어먹을 테이블!). 제3세계. 부질없을 게 빤한 섭동의 제스처. 변이. 복종과 불복종. 복종에의 회귀. 올바르지 못한 무역. 시위. 거짓 자유. 탈주. 저항. 반란과 혁명. 복수(復讐). 갑론을박. 정치는 없고 정치적인 것만 있는 현상. 암약. 모종의 거절 못할 제안. ㅡ 이러한 것들은 놀라울 정도의 은근한 상징과 쉬 알아차리기 힘든 은유로 현현된다.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지구에서든 우주에서든. 인간이 지어낸 극적인 허구가 지루한 사실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이 ‘지루한 사실’이란 앞서 나열했던 모든 것에 플러스알파일 터이고, 진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거짓이 더 나아 보이기 마련이며 또한 진실이 통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최상의 거짓이 될 게 빤할 것이기에 그렇다(설사 그 진실이나 거짓이 교조적일지라도) ㅡ 제수알도의 소설 따위를 보라. 어쩌면 파운데이션 자체가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동시에 셀던 또한 악마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이 매트릭스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 이야기는 실은 해리 셀던보다는 에토 데머즐, 체터 휴민, R. 다닐 올리바의 돌고 도는 역로라고 인지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A circle has no end.」). 파운데이션은 일견 미래를 위한 노력에 예찬을 보내는 것 같으나, 주체성에 대한 관심이 실종되고 그 문제의식이 독점과 비독점 혹은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갈등으로 등치되어 있는 상태를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문제 설정은 스스로의 한계에 갇히게 되고 사람들은 능동성이나 자기가치화 능력을 갖지 못한 희생자 또는 피동적 동원인으로 묘사된다.
대체 심리역사학이 무엇이기에 마뜩잖은 상황에서 도망할 때조차 그들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을 암호 따위로 들먹이는가 ㅡ 「우리는 심리요.」 「나는 역사요.」 ㅡ 이것은 흡사 저 옛사람 분트가 수행한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개의 그림을 보여주고는 묻는다. 「이게 무엇입니까?」 그런 다음 피실험자가 「개입니다.」라고 대답하기까지의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종이 사라지면 다른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하나로 합쳐져 공동 지성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의 정신은 다른 모든 것과 질적으로 다르며,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다른 모든 의식체를 하나로 합한다 해도 그 역할을 대행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과연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며 따라서 여전히 특별한 존재로서 대접받아야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인간이 어느 특정한 계층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모멸감을 느껴야 한다면? 여기 있는 이 모멸감을 느끼는 존재는 또 다른 모멸적 존재가 창조한 것이고, 결국은 이자들 서로 간의 증오가 인간성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자명해질 텐데도? 위에서 언급했던 복잡한 일련의 항목들이 그들을 순순히 방목해 주기는 할는지. 인류는 그러는 건 고사하고 아주 자그마한 충격만 가지고도 적대하는 그룹으로 나뉘곤 하는데 말이다. 셀던은 이것을 일거에 정리하고 있질 않나 ㅡ 「인간은 ‘나는 너보다 낫다’는 흥미진진한 게임에 너무나 쉽게 빠져들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어떤 경우든 한쪽의 갈등을 줄이게 되면 다른 쪽의 갈등이 늘어나므로 동일한 단체 내부에서의 갈등의 총량은 동일하다. 전체적으로 갈등을 줄이거나 늘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겪는 끊임없는 규율, 악덕과 미덕, 자유와 안정의 갈등의 개념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들의 이중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 갈등 자체를 해소시키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
문명의 진보란 사적인 비밀의 제한과 같은 말일 것이다. 아니면 그 사적 비밀의 한계를 실험하는 것에 불과한 것일는지도. 그러면 그럴수록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러한 가정(假定)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나중에는 전혀 문제 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무서운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터무니없이 큰 파이프 그림을 보면서 ‘이것은(ceci, 글씨 형식의 파이프, 그리고 그려진 텍스트로 구성된 이 총체) 파이프가(une pipe, 담론과 이미지에 동시에 속함으로써 그 모호한 존재가 드러나게 된 이 혼합적 요소) 아니다(n’est pas, …과 등가일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 적절하게 …을 재현할 수 없다)‘라고 찢어발긴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그러니, 총은 훌륭한 무기이나 그 총구는 어느 쪽이든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인 것을 말살하는 것보다 그 정치적인 것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말살하는 편이 더 심각할 테니까. 카뮈가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 이야기를 하면서 마지막에 ‘우리는 시시포스를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과연 어떤 의미로 추측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 삶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나 계속해서 바위를 굴려야 한다는 것을 ㅡ 돔(dome) 안에 갇혀 살고 있는 그들을 맞이했던 것은 역시나 돔(dom; enDOMandiovizamarondeyaso……)이었다. 허나 우스꽝스럽게도 소설에서 묘사된 제2파운데이션의 황금률은 다음과 같다. 「절대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어쩔 수 없는 경우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그럴지도. 아닐지도.
덧) 나는 총 일곱 권의 파운데이션을 한 줄로 늘어놓은 채 제1발광체의 빛남 혹은 파스타(far star)호에라도 탄 기분이 되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샘솟는 과도한 충성과 과잉된 금속의 고집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확대 지향적인 도덕의식으로 말미암아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갈채로 심장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이 연결된 책등으로부터 저 옛날 가면을 바꾸어 심리변화를 나타내던 변검스러운 기묘한 맥놀이가…….」 이제는 책등과 표지가 뇌리에 박혀서, 나는 그것들을 보지 않고도 하얀 종이에 똑같이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의 감각을 체득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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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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